동창 손시향의 무시에 오기로 배우의 길 택한 신성일
신성일은 고교 2년 이후 집안이 망하는 바람에 떠돌이 생활을 했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처음에 청계천 판자촌에 자리를 잡았다. 1950년대 후반, 대한민국 최고 번화가는 누가 뭐래도 충무로와 명동이었다. 신성일은 그때 그 거리를 걷는 것을 즐겼다.
충무로 1가 중국대사관과 중앙우체국 사이에 ‘기쁜소리사’라는 음향기기사가 있었는데 그 앞에 가면 최신 음향기기를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또 지금의 프라자호텔 뒤쪽은 화교의 집결지였다.
그날도 기쁜소리사 부근을 걸어가던 중 맞은 편에서 모자부터 구두까지 모조리 하얀 컬러로 치장한 일명 ‘마카오 신사’가 걸어왔다. 몸에 걸친 건 죄다 마카오 수입품으로, 그 시대 최고 멋쟁이들의 패션이었다. 당시는 국민 1인당 GNP가 200달러가 안되던 시절이었다. 그 신사는 양쪽에 보디가드 두 명이 붙어서 호위를 받고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어서 자세히 보니 고교 동창 손시향 이었다.
손시향은 여러모로 신성일과 처지가 닮은 꼴 이었다. 그와는 경북고 다닐때 3년 동안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그는 50년대 집아네 그랜드 피아노가 있을 정도의 대저택에 사는 대구의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학교 때도 점심시간만 되면 급우들에 둘써싸여 새로운 팝송을 소개하곤 했다. 매력적인 여배우 도리스 데이가 출연한 영화 ‘카라미티 제인’(195년)의 타이틀곡 ‘시크릿 러브’를 칠판에 영어로 적어가며 가르쳐줄 정도였다.
그의 집안도 신성일과 마찬가지로 학교다닐 때 폭삭 망했다. 어머니가 계모임을 하다가 계가 깨지는 바람에 세무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역시 갖은 난관을 겪으며 수원의 서울 농대에 들어가는 데 그쳤다.
음악적 재능이 있던 손시향은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가요계에 뛰어들어 성공가도를 달렸다. 신성일 역시 그의 히트곡 ‘검은 장갑’을 알고 있었다.
서울 충무로 복판에서 대구의 학교동창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손시향은 본명이 손용호였다.
신성일은 크게 불렀다. “용호야!”
손시향은 신성일을 알아 보았다. 신성일은 동창끼리 최소한 서로 얼싸안고 “니, 잘 살았나? 친구야!” 하고 외치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고교시절 각별한 사이였던 데다 서울 한복판에서 만났으니... 그런데 손시향은 신성일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충무로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고교 동창 손시향의 무심한 태도는 신성일에게 큰 충격이었다. 손시향은 “오랜만이야” 하고 신성일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버렸다. 보디 가드 2명을 거느리고 가는 그는 보통 거들먹거리는 게 아니었다. 신성일은 뒷통수를 둔기에 맞은 듯 한참동안 멍해 있었다.
순간적으로 신성일은 손시향의 처지와 비교되는 것을 느꼈다. 고등학교 같은 반으로 대구에서 똑같이 집안이 망해서 상경했는데…. 당시 백수였던 신성일의 옷차림은 아주 남루했으리라. 반면 손시향은 미도파 백화점의 지하 클럽 무대에 고정 출연할 정도로 잘 나가는 가수였다.
손시향과의 조우는 그의 히트곡 ‘검은 장갑’의 가사처럼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하며 내미는 손”이었다. 손시향은 대단한 저음으로 감동을 주는 목소리ㄹ르 가진 가수였다.
신성일이 그 자리에서 했던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그래, 너 노래 잘 한다. 하지만 난 너보다 잘생겼다는 소리 듣는다. 두고 보자.’
신성일은 혼이 날아간 채 충무로 3가 중부 경찰서 쪽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어디로 걷고 있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걷다가 얼굴을 들어보니 눈앞에 ‘한국배우전문학원’이란 간판이 들어왔다. 신성일이 당시는 꼭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목표를 둔 건 아니었지만 뭔가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묘한 힘에 이끌려 배우학원 1층 문을 열면서 들어가 가진 돈도 없어 수업료도 공군장교로 있던 형님에게 빌려서 냈다. 신성일의 배우로서의 노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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