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때 새벽에 빚쟁이 구둣발에 맞았던 신성일의 아픈 기억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뒤에는 항상 남모르는 사연이 있듯이 대스타 신성일에게도 청소년기에 견디기 힘든 일이 있었다. 그는 17살인 경북고 2학년때 평생 잊지못할 수모를 당하면서 '인생은 홀로서기'라는 것을 터득했다.
2학년 1학기 말 무렵의 어느 날 새벽이었다. 갑자기 건장한 남자 서너 명이 신발도 벗지않고 방에 침입하여 닥치는대로 물건을 걷어찼다. 어머니가 책방·약방을 하시면서 하던 계(契)가 깨지는 바람에 집안이 온통 쑥대밭이 된 것이다. 어머니는 빚쟁이를 피해 야반도주했고, 집안에는 신성일과 여동생 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세 살 위인 형은 당시 공군 복무 중이었다.
침입자들은 어머니의 소재를 대라며 무지막지하게 신성일을 때렸다. 얼굴에서 코피가 줄줄 쏟아지는데도 아랑곳 않고 신성일의 멱살을 잡은 채 1㎞가량 떨어진 경북도청까지 끌고 갔다. 신성일은 그때까지만해도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면서 공부만 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모범생이였다. 초등학교 6년 성적표가 모두다 ‘甲上’(최고 등급)일 정도였다.
침입자들은 이른 아침인데도 경북도청 앞마당에서 어머니의 행방을 다그쳤다. 당시 신성일의 어머니가 경북도청 부녀계장이었기에 침입자들은 경북도청앞을 택한 것 같았다.
신성일은 나이 17살때 이 세상은 결국 나 혼자며, 자신을 돌볼 사람은 자기자신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침입자들에 끌려가면서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 지경까지 됐을까’ 하며 오히려 연민을 갖게됐다.
그때부터 결국 죽는 것도, 아픈 것도 자신의 몫이고 ‘나 홀로’에 대한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편 자기관리만 잘하면 세상에 무서울 게 없고 좋은 부모 만난 친구들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
신성일은 1962년 영화 ‘아낌없이 주련다’로 스타반열에 오른 직후에 고2 때 자신을 폭행했던 사람을 찾아 대구로 내려갔다. 그때 침입자로 폭행했던 사람 중 한 명이 대구 시내 한 극장 앞에서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그동안 가슴에 맺힌 것을 풀고 싶었다. 어떻게 어린아이를 그런 식으로 때릴 수있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먼저 가까운 고교동창에게 그 사람을 살피도록 부탁했다. 그런데 막상 대구역에 내리니 동창생은 “신영(신성일 본명)아, 그 사람 작년에 죽었단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맥이 탁 풀려서 역에서 한참 서 있다가 바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신성일은 그때 고교 시절의 수모를 평생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일로 인해 무엇보다 학업이 엉망이 됐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겨우 손에 쥐었지만 더 이상 대구에서 살 수 없어 무작정 상경(上京)했다.
1957년 서울에 올라와 대학입시에서 연달아 떨어지면서, 방황은 끝이 없었다. 판검사가 한번 돼보겠다는 야무진 포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공군장교로 자리 잡은 형님에게 도움 받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나중에는 당시 서울 빈민층이 모여 사는 청계천에서 호떡장사까지 했다. 장사도 해본 놈이 하는 거지... 파리만 날린채 석 달 만에 그나마도 접게됐다. 돈벌어 공부하겠다던 야망도 펼쳐보지 못한채, 다시 서울 거리를 헤매야 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잊지 않았다고 한다. 남한테 빌어먹고 다니는 건 남자로서 최대의 치욕이라는 각성(覺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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