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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이 조영남 밟고 집어던진 사연

primarosa 2023. 5. 20. 02:02

조영남 무대, 하루 네 번 꽃다발 들고가   

 

신성일은 가수 조영남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한편으로 미안한 생각도 든다며 잊지못할 사연을 털어놓았다.  1969년 당시 최고인기를 누던 mbc ‘10대 가수쇼’가 부산 국도극장 개관기념으로 부산에서 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신인가수 조영남은 바로 전해인 1968년 ‘딜라일라’로 일약 스타반열에 올랐다.  

 

 ‘딜라일라’는 변심한 애인이 불 꺼진 창 안에서 딴 남자와 잠자리하는 것을 보고 개탄하는 내용이다.  

‘밤 깊은 골목길 그대 창문 앞 지날 때/창문에 비치는 희미한 두 그림자/그댄 내 여인 날 두고 누구와 사랑을 속삭이나/오 나의 딜라일라’라는 애절한 가사로 美가수 톰 존스의 원곡을 번안한 것이었다.  

 

이 노래가 당시 세시봉 세대들을 열광케했음은 말할것도 없다. 조영남은 TV에서 부엌칼을 치켜들고 두 남녀에게 다가가는  연기하며 노래를 하기도 했다. 신성일에 따르면 조영남은 신인 시절부터 전혀 신인 같지 않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라는 소리가 신성일 귀에 자주 들려 왔다. 특히 신성일과 절친인 포클로버(최희준·박형준·위키 리·유주용) 멤버들은 조영남이라면 치를 덜었다. 포클로버는 편곡을 하지못하면 가수측에 끼지못한다고 생각하는 실력파였다.  

 

조영남 외에 비슷한 후배가 하나 더 있었다. ‘아마도 빗물이겠지’로 엄청난 인기를 모은 신인가수 이상열이었다. 둘은 선배들 사이에서  ‘건방진 쌍두마차’로 불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조영남은 대선배들 앞에서도 다리를 꼬고 앉았을 정도였다.  

 

부산 국도극장 대기실은 출연순서를 기다리는 여러 가수들로 붐볐다. '쇼의 간판'으로 초청된 신성일은  그날따라 옷차림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엄앵란이  프랑스제 고급옷감을 구해 지은 옷과 턱시도, 에나멜 신발로 한껏 멋을 냈다.  

무대에 설 차례가 되어 얼굴분장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형님, 옷 참 좋~습니다.”  

 

조영남이 소파에 드러누워 발을 꼰 채 올려다보며 말을 던졌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 다음의 말이  신성일을 폭발하게 만들었다.  

 

“한남동 양부인 집에 가면 커튼 옷감이 다 그런 거던데요.”  

 

‘양부인’이라면 술집 여자를 말하는 것이다. 아내가  최고급으로 지어준 옷을 그렇게 비유하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조영남을 바닥에 팽개친 후 몸을 밟았다. “너 이 자식. 내 앞에 또 나타나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러고는 번쩍 들어 출입구쪽으로 던져버리자 조영남도 돌발적인 상황에 놀라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무대 인사를 마치고 대기실로 다시 돌아왔더니 모두가 신성일을 걱정했다. 

 

당시 조영남의 매니저가 명동의 주먹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어떤사람은 위해가 있을지모르니 도망가라고 충고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신성일도 그때는 겁나는 게 없었다고 한다. 태연히 신발끈을 묶고 있는데 대기실 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올 것이 왔구나. 한판 떠야겠구나’고 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조영남 매니저가 무릎을 꿇은 채 5m가량을 기어오는 게 아닌가.  

 

“큰형님, 영남이의 무례함을 사과드립니다.”  

 

알고 보니 조영남의 매니저는 당대 최고의 복싱선수 서강일과 주먹계 족보상으로 동생뻘이었다. 신성일과 서강일이 의형제 사이라는 걸 알고서 그가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조영남 사건은 연예가에 금방 소문이 퍼졌다.  

신성일도 그 일 이후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조영남이 시민회관(구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루 네 차례 리사이틀을 한다는 정보를 매니저가 전달했다. 그래서 공연날은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네 번의 공연이 끝날 때마다 무대로 올라가 꽃다발을 전해줬다.  

신성일 나름대로의 미안함에 대한 표현이었다.